"신에 대한 내 물음은 딱 한 가지였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크게 잘못했기에 이런 무서운 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이라기보다는 포악이요 항의였다. 그러니까 내가 신의 부당함을 항의하고 내가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나는 그닥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죄가 있다면 어디 말해보시지 하는 신에 대한 일종의 시험이었다. "
그러나 작가는 신으로부터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다.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제목은 신의 응답을 듣기 위해 끈질기게 매달리던 당시의 답답한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신을 향해 어떤 독한 저주를 퍼부어도 신은 응답하지 않았기에 작가는 스스로 해답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고통과 더불어 살 수 있게는 되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을 얻기까지 작가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해야만 했다. ‘자식 잡아먹은 년’이라고 자학하며 음식을 넘기는 것조차 죄스러워 음식을 먹고 나면 반드시 토해내야만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싫어서 얼굴을 찡그려야 했다고 한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벼락처럼 닥친 일에, 작가는 신에 대한 의문을 버릴 수도 없고 모든 것이 신의 섭리라고 인정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니 신에 대한 의구심과 부정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중략) 내 아들의 죽음의 의미는 뭘까? 죽음 후에도 만남이 있을까? 그 애의 죽음은 과연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신이 있기나 있는 것일까? 인간의 기도나 선행과는 상관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한치 앞도 못 내다보게 눈을 가려놓고 그 운명을 마음대로 희롱하는 신이라면 있으나마나가 아닐까? "
이런 상황에서 작가뿐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갈구하는 것은 신의 뜻은 무엇인지,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이라면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이가 사후의 생명을 얻었을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보증 역시 받고 싶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 혹시 내가 너무 교만했던 것은 아닌지, 알게 모르게 내가 저지른 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책하듯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작가 역시 똑똑하고 유능했던 아들 덕분에 교만했던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그렇게 쉽게 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무서운 사실을 견디기 위해서 왜 그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영문을 알아야만 했다. 아들을 잃은 것과 동시에 내 교만도 무너졌다. 재기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그러나 교만이 꺾인 자리는 겸손이 아니라 황폐였다.
나는 신이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지만 또한 그러고도 그분을 덧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직 그분만이 생사를 관장하고 있다고 신의 권위를 믿고 있었고, 불쌍하게도 깊이 공구(恐懼)하고 있었다. "
하필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하필 내 아들이어야 하나, 라는 문제에 매달리던 작가는 어느 날 어느 어린 수녀가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다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수녀는 동생이 속을 썩여서 늘 집안이 시끄러웠다며 왜 하필 내 동생이 이렇게 속을 썩이는지 비관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 되란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뭐관대…….’라고 생각을 고쳐 먹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좋아졌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작가는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되나?’는 간발의 차이 같지만 실은 사고의 대전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가는 자신의 막내딸보다도 앳돼보이는 수녀님의 유연한 사고에 놀라워한다. 그러면서 작가도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을까?’라는 집요한 질문과 원한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고통 속에서 구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임을 깨닫는다. 결국 작가는 아무 대답 없는 신이 작가 스스로 답을 찾게 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이런 끔찍한 극형에 당해서는 그 영문을 물을 권리가 있다. 신의 권위가 장난질칠 권리가 아닌 바에야 의당 그 극형이 무슨 잘못에서 연유했는지 밝혀줘야 한다. 신, 당신의 존재의 가장 참을 수 없음은 그 대답 없음이다. 한 번도 목소리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있는 것처럼 느끼고, 부르고, 매달리게 하는 그 이상하고 음흉한 힘이다. 영원히 순화될 것 같지 않은 원색적인 포악이 거침없이 치밀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신의 문제는 나는 무엇일까 하는 나의 내면응시로 귀착되고 만다. "
뿐만 아니라 작가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동안, 신이 자신에게 ‘밥이 되어 오시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신의 섭리를 알지 못하는 자신이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것이라고, ‘우선 먹고 살아라 하는 응답으로’ 자신에게 오셨던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몸부림 치면서도 ‘밥 냄새와 밥맛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을 거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이해인 수녀가 계시는 분도 수녀원에 잠시 머물지만, 작가가 말하는 신이란 반드시 천주교의 하느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수녀원의 시간에 맞춰 기도를 올리면서도 틈틈이 『법구경』 등의 책을 읽으며 총체적으로 신에 대한 의문에 매달린다.
영화 <밀양>의 여주인공이 아들의 죽음, 신과 인간, 용서와 구원의 문제에 부딪혀 신을 의심하고 저주하다가 끝내는 신이 허락한 자신의 삶을 이어가듯이, 작가 역시 신이 준 불합리한 고통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내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구태여 숨기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며 앞으로는 그것에 의지해 살 수 있으리라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한다.
신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어떤 초월적인 섭리와 질서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섭리와 질서가 반드시 인간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기 능력의 한계를 깨달을 때, 자신이 거대한 세계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때, 뼈아프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의문 중의 하나를 『한 말씀만 하소서』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따온 곳: http://blog.aladdin.co.kr/738132104/175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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